이단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그리스도교[기독교]의 토대이다. 그리스도의 정체를 제대로 믿고 그의 사역의 사실성과 의미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제대로 믿는 일이 기독교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역사 가운데서 이 일에 대해서 자신들 마음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고, 그에 대해서 교회가 성경에 근거해서 그렇게 믿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선언하고 돌이키기를 요청했으나 성경적 가르침에 따르지 않기로 고집하고 나간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가 이단의 성립 요건이다. (1) 성경을 따르는 정통주의적 가르침과는 다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데, (2) 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바른 데로 인도하려는 인도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옳고 성경적이며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1. 현저한 이단들
그와 같이 하여 역사 가운데 나타난 가장 현저한 이단들로는 첫째로, 영지주의 이단과 그와 연관된 것들을 언급할 수 있다. 이들은 당대의 주류 사상인 플라톤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기독교를 믿으려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기본적 신념이 이 사상을 특징 지워 기독교도 이 원칙에 따라서 재규정하고 그렇게 믿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도 기본적으로 물질이니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도 결국은 이 몸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최종적 구원의 상태도 영혼만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믿는 것이다. 창조도 그런 원리에 따라 해석하여 영이시므로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유출(또는 발출, emanation)되었는데, 그 하나님께 가까우면 영적인 성질이 더 하고, 멀면 물질적 성질이 더하여 진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 시대의 주요 사상에 충실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그런 식으로 믿으려고 한 것이므로 이단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이런 생각을 예수님에게 적용해서 예수님은 물질을 본질적 요소로 지니실 수 없으므로 몸을 가진 듯이 보였다는 가현(假現)설(docetism)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수님의 신성은 믿되, 자신들의 기본적 관념을 도무지 고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본적 관념에 따라서 기독교를 변경시켜 믿으려고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성부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유대교적 사상에 충실하여 예수님은 그저 사람이지 온전한 신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타나기 쉬웠고(예수님은 로고스가 아니시라는 ‘알로이 파’(Aloi)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부분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성자는 성부보다는 조금 못하신 피조된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영원 가운데서 “성자가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Arians)가 나타났다. 또한 후에는 성자께서 인간적 몸과 인간적 혼을 취하셨으나 인간의 영은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자리를 로고스가 차지했다고 하는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파가 나타났다.
후에는 예수님은 온전한 인성과 온전한 신성은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그 온전한 인성과 온전한 신성의 결합에 대해서 잘못된 입장을 표명하는 이단들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서, 신성과 인성이 합하여져 인성도 아니고 신성도 아닌, 그러나 신성에 싸여진 인성 같은 것이 주어져 있다는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은 천상적 인성이요 신적인 인성이라고 주장하는 유티쿠스(Etychus)파의 단성(單性)론적 견해가 나타났다. 이런 입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의 인성과는 다른 인성이라는 것이 강조되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분들의 견해와 비슷한 것을 시사하는 일이 있어서 걱정이 된다. 또한 신성과 인성의 두 가지 다른 성질을 지녔으니 예수님은 두 인격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파(Nestorians)가 나타나기도 했고,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본적 관념을 포기하지 못한 채 성경을 이해해 보려고 하다가 나타난 이단들인 것이다. 인성은 당연히 인격을 지니므로 예수님은 그 인성의 인격과 함께 신성의 인격도 지닌 것이 아니냐고 묻던 학생들을 기억한다. 이를 학교 다닐 때에 교정 받으면 다행지지만, 계속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주장하려고 하면 결국 이단적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따라서 정통 신학이 규정한대로의 온전한 삼위일체적 이해를 가지지 않는 것도 이단이다. 예를 들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저 한 하나님이 다른 양태로 나타나 것일 뿐이라고 하는 양태론(modalism)적인 생각이 대표적인 이단이다. 그리하여 성부의 시대가 있었고, 성자의 시대가 있고, 이제는 성령의 시대라는 표현도 잘못하면 이런 뉴앙스를 전달할 수 있기에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성부만 있었고, 그가 성자로 나타났고, 그 후에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생각은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대립하는 것이다.
그와는 달리 성부, 성자, 성령께서 계시되, 성부는 가장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그보다 조금 못하시고, 성령은 그보다도 조금 못하시다는 식의 사유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삼신(三神)론적인 이단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런 방향을 향해 가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단들을 다 언급할 수 없기에 일단 기독론과 삼위일체와 관련된 현저한 이단들을 언급하였다. 이런 예를 통해서 과거의 현저한 이단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이단이 되는 길인지를 명확히 하는 일이 필요하다.
2. 이단의 특성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이단은 성경이 가르치는 정통적 가르침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단을 피하는 제일 좋은 길은 정통적 가르침을 잘 공부하고 애를 써서 그 입장을 잘 따르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에 근거한 바른 교리를 잘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단의 길을 여는 길이다. 교회는 항상 성경에 근거한 교리를 잘 배워 가려고 노력해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조를 무시하고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잠정적으로 이단을 포용하려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성경을 통해서 잘 배워 가야 한다. 그런데, 이단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만을 따르는 정통적 가르침을 따라 가지 않는다.
둘째로, 따라서 이단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들을 자꾸 강조하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정통적 종말론에 충실하지 않고, 비성경적인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친다든지, 예수님의 재림 날자를 예언하고 연기한다든지(여호와의 증인), 이미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곳에 와 있다고 가르친다(통일교, 新天地 등).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악한 영들”이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고 이전에 자신들이 생각한 귀신들과 성경에 귀신이라고 언급한 것을 잘못 연관시키는 일도 한다(베뢰아 이단). 예수님께서 온전히 이룬 것들에 충실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든지(안식교), 유월절 등의 구약의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하나님의 교회, 중국의 여러 이단들).
셋째로, 기본적으로 이단은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가 있다고 하고(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천주교회), 또는 계시가 지금도 계속된다고 주장한다(퀘이커, 천주교회, 그리고 오늘날의 여러 이단들). 그리하여 계시적 예언을 강조하고, 성경이 작성되는 시대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이 같은 하나님의 사역이 계속된다고 주장하면서 이전에 계시를 주신 하나님이 계시를 지금도 주신다고 주장한다.
넷째로, 그 반대로 성경의 어떤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그를 따르지 않는 입장도 이단인 것이다. 대개 이런 입장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른 주장을 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창세기 기록과는 다르게 된 것이라고 하며, 예수님이 실질적으로 부활하지 않으셨든지 다른 차원으로 가신 것이므로 그 시체를 무덤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하는 것도 이단적 주장이다.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이심을 이심을 부인하면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말하거나,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민의 구원을 시사하거나 다른 종교를 믿어도 참으로 신실한 자들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는다고 하는 내포주의(inclusivism, 또는 포괄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다 이단적인 것이다.
또한 구원론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한 사람들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이나, 그렇게는 안 되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다음에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은총에 근거한 선행을 해 나가면 종국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sim)를 주장하는 것도 이단이다. 전통적 천주교회의 그원론이 이런 주장이기에 종교개혁자들은 그곳에 바른 복음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바른 복음이 없는 곳에는 교회가 있지 않은 것이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은 복음의 참된 의미를 손상하여 교회를 해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잘못된 생각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하였다가도 그것이 잘못이라는 바른 교회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그 잘못된 생각을 버려버리면 그 사람이나 집단은 이단이 아니다. 일정한 과정을 통해서 바른 교회로 돌아 올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러므로 항상 고치고 그 고쳤다는 분명한 증거를 내 보아면 된다. 개인은 그렇게 하기 쉽다. 그러나 집단은 그렇게 하기 어렵기에 일단은 그 집단을 해체하고 개개인이 바른 교회에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도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와 같은 잘못된 생각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고집하면 이단이 되는 것이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살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가 비성경적인 잘못된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나 않은가를 살피면서 회개하고 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중세 말기에 천주교회에 속해 있던 사람들 중의 일부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자신들이 잘못 믿고 있음을 인식하고 인식과 삶과 예배를 변혁하고 바른 가르침에로 돌이킨 것이 종교개혁이었다. 지금도 잘못된 곳에 속해 잇는 사람들은 성경에 비추어서 바른 가르침에로 돌아가야만 한다. 특히 성경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그 일부만을 믿던지 하는 교단에 속한 사람들은 아주 심각하데 자신들의 입장을 점검해야 한다. 성경은 온전히 다 믿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성경이 사실로 말하는 것의 사실성을 다 믿고, 그 의미를 성경이 말하는 대로 믿어야만 한다.
둘째로, 주변에 이런 잘못된 이단적 가르침을 가르치는 분들과 그런 곳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바른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입장에로 돌아오기를 위해 힘써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믿지 않는 분들이 주께로 돌아 와야 구원을 얻을 수 있듯이 잘못된 가르침을 버리고 바른 가르침에로 돌아 와야만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정통적 가르침을 잘 받아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 교회 공동체는 그 교회가 정통 교회에 속해 있는 지를 잘 살피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 교단 전체를 정통적인 교단으로 개혁하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정통 교회에 속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면서 바른 가르침을 추국하고 그것을 잘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잘못 가르치면 우리 교회를 이단 교회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두려움과 딸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게 가르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정통적 가르침을 가르치는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은 그런 가르침을 참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하나님의 생명의 가르침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생명적 유대를 가지는 마음으로 교회의 지체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바른 교회에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속해 있는 사람들만이 보편의 교화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는 이런 바른 교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심령으로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과연
(1) 성경이 가르치는 정통주의적 가르침에 충실하게 믿고,
(2) 그에 근거한 예배를 하며, 그리고
(3) 과연 그렇게 사는 가이다.
그렇지 않을 때 항상 회개하면서 우리를 돌이켜야 한다. 이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도 돌이키고 함께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만 한다. 돌이키지 않고 그 자리에 그저 있는 것은 스스로 말하는 길을 찾아 가는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이들은 그것을 버리고 더 이상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주께로 가는 것만이 살 길이다.
출처 : 종교와진리 (http://www.churchheres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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